히가시데 아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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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가시데 아키히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코치로, 내야수로 활약했다.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하여 2015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루수와 유격수를 주로 맡았으며, 준족과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2008년과 2009년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2015년 은퇴 후에는 히로시마의 코치로 활동하며, 2022년에는 1군 야수 종합 코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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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데 아키히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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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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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히가시데 아키히로 (東出輝裕) |
출생일 | 1980년 8월 21일 (43세) |
출생지 | 후쿠이현 사바에시 |
신장 | 171cm |
체중 | 75kg |
포지션 | 내야수 / 코치 |
투구 | 우투 |
타석 | 좌타 |
선수 경력 | |
고등학교 | 쓰루가 기히 고등학교 |
프로 입단 |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9 ~ 2015) |
드래프트 | 1998년 드래프트 1위 |
데뷔 | 1999년 5월 11일 |
마지막 출장 | 2012년 10월 6일 |
연봉 | 9,000만 엔(2013년) |
코치 경력 | |
구단 |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5 ~ 현재) |
역할 | 2군 내야 수비・주루 코치 |
등번호 | 72 |
기록 | |
타율 | 0.268 |
안타 | 1,366 |
홈런 | 12 |
타점 | 262 |
도루 | 143 |
수상 | |
베스트 나인 | 2회 (2008, 2009) |
올스타전 출장 | 4회 (2006, 2008 ~ 2010) |
2. 프로 입단 전
후쿠이현 사바에시 출신인 히가시데 아키히로는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 시절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학년 때는 팀을 8강으로 이끌었고, 호리코시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연속 도루로 결승점을 만드는 등 빠른 발을 과시했다.
3학년 때는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와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모두 출전하며 투수 겸 내야수로 활약했다.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지만, 선발 대회에서는 PL가쿠엔 고등학교에, 선수권 대회에서는 오비린 고등학교에 패했다. 고세키 준지는 히가시데의 고시엔 활약을 보고 자신의 저서에서 '천재'라고 평가했다.
1998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에 발탁된 히가시데는 나카무라 준지 당시 감독으로부터 '다쓰나미 가즈요시 이래의 일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격수로서 대회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고교 통산 타율 4할 6푼 4리, 34홈런, 50m 달리기 5초 7, 멀리 던지기 115m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신체 능력을 보여주었다. 199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1]
2. 1. 프로 입단 후
1999년 고졸 신인으로 1군 경기에 출전, 주로 2루수를 맡았다. 5월 1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2번·2루수로 출전, 이리키 유우사쿠에게서 내야안타를 기록했다. 올스타전 웨스턴 리그 선두 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2000년 등번호를 2번으로 변경, 유격수로 포지션이 변경되었다. 에디 디아스의 부상으로 기무라 다쿠야와 함께 1, 2번 타자로 활약했다. 112경기 출전, 리그 최다 25실책을 기록했지만, 217척살, 356보살, 레인지 팩터 5.0을 넘었다.2001년 월간 리그 최다 도루(8개)로 JA전농 센트럴 리그 GOGO상(호주루상) 수상, 구단 신기록인 시즌 49희생타를 기록했다. 140경기 출전, 타율 2할 6푼 2리, 5홈런, 35타점, 26도루(개인 최고)를 기록했다. 리그 최다 5개의 3루타를 기록, 주로 2번 타자로 활약했다. 27실책으로 2년 연속 리그 최다를 기록했지만, 보살 수는 미야모토 신야(425개), 이시이 다쿠로(417개)에 이어 411개를 기록했다. 제34회 IBAF 월드컵 일본 대표팀에 발탁, 팀 내 1위인 10타점을 기록, 3루수로 대회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쿠바전에서 실책으로 동점을 허용했다.[2]
2002년 에디 디아스가 2루수로 복귀하며 유격수로 개막을 맞았지만, 부상으로 5월 26일부터 7월 7일까지 전력에서 이탈했다.[1] 2003년 다시 2루수로 변경, 47경기 출전, 2004년에는 76경기 출전했다.[1]
2005년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이적해 온 야마사키 고지가 유격수, 기무라 타쿠야가 2루수에 정착, 2루수나 외야 대수비로 교체 출전했다. 7월 17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안도 유야에게 연장 10회 결승 홈런을 쳤다.[25]
2006년 마티 브라운 감독 부임, 소요기 에이신과 함께 개막을 맞았다. 4월 후반 소요기가 유격수로 복귀하며 2루수로 복귀했다. 7월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1] 4년 만에 규정 타석을 채우며 타율 2할 8푼대를 유지, 처음으로 끝내기 안타를 쳤지만, 2루타와 홈런은 양대 리그 최소였다. 2루수로 122경기 출전, 리그 1위 277척살, 421보살, 8실책, 수비율(.989) 리그 2위를 기록했다.[1]
2007년 132경기 출전, 수비에서 2루수로 124경기 출전, 리그 1위 419보살, 294척살, 7실책, 수비율 9할 9푼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오프에 와세다 대학 진학 의사를 밝혔다.
2008년 1, 2번 타순으로 고정, 138경기 출전, 타율 3할 1푼(처음으로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시즌 종반 손가락 부상으로 12실책을 기록했지만, 안정된 수비로 내야수 최다 득표(141표)로 베스트 나인(2루수 부문)에 선정되었다. 구단 사상 최연소 28세에 FA권을 취득,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히로시마 잔류를 선언, 4년 계약, 단년 연봉 1억엔을 받게 되었다.
2009년 5월 16일 2년 만에 외야 수비(우익수)에 나섰지만, 수비 기회는 없었다. 올스타전에 2년 연속 출전, 히로시마에서 열린 2차전에 출전했다. 142경기 출전, 팀 내 1위 타율 2할 9푼 4리를 기록했다. 2루수로 리그 최다 14실책을 기록했지만, 팀 내 1위 14도루, 2년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2010년 4월 23일 도쿄 돔 요미우리전에서 도노 슌에게서 5년 만에 홈런을 기록했다.[1] 올스타전에 팬 투표로 3년 연속 출전, 3안타를 기록했다.[1] 8월 하순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1]
2. 1. 1. 1999년 ~ 2001년
이듬해 1999년, 고졸 신인으로 1년 차부터 1군 경기에 출전하며 주로 2루수를 맡았다. 5월 1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데뷔 후 처음으로 2번·2루수로 출전했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이리키 유우사쿠에게서 내야안타를 기록했다. 올스타전 웨스턴 리그 선두 타자로 선발 출장했다.다음 해 2000년에는 등번호를 2번으로 변경했고 동시에 유격수로 포지션이 변경되었다. 2루수 주전 후보였던 에디 디아스가 정규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대신 2루수에 들어간 기무라 다쿠야와 함께 1, 2번 타자로 스타팅 멤버가 되었다. 112경기에 출전하여 수비 면에서는 리그 최다인 25실책을 기록했지만, 217개의 척살과 356개의 보살, 레인지 팩터는 5.0을 넘었다.
2001년에는 월간 리그 최다 도루(8개)로 JA전농 센트럴 리그 GOGO상(호주루상)을 수상했고, 구단 신기록인 시즌 49희생타를 기록했다. 시즌 140경기에 모두 출전해 타율 2할 6푼 2리, 5홈런, 35타점을 기록했고, 도루는 개인 최고 성적인 26개를 남겼다. 리그 최다인 5개의 3루타를 기록하는 등 주로 2번 타자로 활약했다. 수비에서는 27차례의 실책으로 2년 연속 리그 최다를 기록했지만, 보살 수는 미야모토 신야(425개), 이시이 다쿠로(417개)에 이어 411개를 남겼다. 제34회 IBAF 월드컵 일본 대표팀에 발탁되어 예선과 본선을 통해 팀 내 1위인 10타점을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거의 경험이 없는 3루수를 맡아 대회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결승 진출이 걸린 쿠바전에서 1점 리드하는 투수전 끝에 실책을 범해 동점을 허용했다.[2]
2. 1. 2. 2002년 ~ 2004년
2002년에는 에디 디아스가 2루수로 들어가면서 히가시데는 유격수로 개막을 맞이했지만,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5월 26일부터 7월 7일까지 2개월간 전력에서 이탈했다.[1] 부상 영향으로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1] 그해 팀 동료인 3루수 아라이 다카히로와 최다 실책을 다투었지만, 장기 이탈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어 아라이가 최다 실책을 기록했고, 히가시데는 3년 연속 최다 실책은 면했다.[1] 이듬해 2003년에는 다시 2루수로 변환했지만 47경기에만 출전했고, 2004년에는 76경기에만 출전했다.[1]2. 1. 3. 2005년
팀 사정으로 유격수를 맡기도 했지만,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기쿠치하라 쓰요시와의 트레이드로 이적해 온 야마사키 고지가 유격수, 기무라 타쿠야가 2루수에 정착하면서, 히가시데는 2루수나 외야의 대수비로 교체 투입되어 출전했다. 7월 17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호투를 계속하고 있던 안도 유야로부터 연장 10회에 결승 홈런을 쳤다.[25]2. 1. 4. 2006년
마티 브라운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전년도에 유격수를 지킨 야마사키, 2루수는 신인 선수인 소요기 에이신과 함께 개막을 맞이했다. 그러나 야마사키가 타격 부진을 겪는 반면, 개막전에 들어가서 히가시데가 대타로 출전하는 등의 활약으로 4월 후반에 소요기가 유격수로 되돌면서 히가시데는 2루수로 복귀했다. 7월에는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1]4년 만에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타율은 시즌을 통해 2할 8푼대를 유지했고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끝내기 안타를 쳤지만, 2루타와 홈런은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에서 양대 리그 최소 기록이었다(2루타는 다나카 겐스케와 타이 기록이며 홈런은 아카호시 노리히로와 타이). 도루 성공률도 낮았다(성공 11차례, 실패 18차례).[1] 수비에서는 2루수로서 122경기에 출전해 리그 1위인 277개의 척살과 421개의 보살, 그리고 8차례의 실책으로 수비율(.989)에서 리그 2위를 차지하는 등 눈부신 성장을 보였다.[1]
2. 1. 5. 2007년
타격면에서는 전년도를 밑도는 성적을 남기면서 스타팅 멤버 및 타순과 고정할 수 없는 경기가 증가했지만 132경기에 출전했다. 수비면에서는 2루수로서 124경기에 출전해 리그 1위인 보살 419개, 척살 294개, 실책 7차례, 9할 9푼의 수비율을 기록하여 리그 2위를 차지했다. 도루사는 전년도인 18개에서 4개로 감소되었다. 삼진 55개는 마에다 도모노리의 31개에 뒤를 이은 팀내 2위이며 삼진률도 마에다 도모노리에 이어 끝에서 2위를 차지했다. 병살타 3개는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에서 다카하시 요시노부(요미우리), 아카호시 노리히로(한신), 애런 가이엘(야쿠르트) 등과 대등한 리그 최소 기록이며 2루타, 3루타, 홈런, 장타율, 타점 등도 리그 최소 기록이었다.[26] 아카호시와 함께 2년 연속으로 규정 타석을 채웠지만 홈런은 없었다(역대 8·9번째로 9·10번째).오프에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 모교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 교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와세다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밝혔다.
2. 1. 6. 2008년
시즌 초에는 대기 선수나 하위 타순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1, 2번 타순으로 고정되었다. 타율은 3할 6푼 전후를 유지했고, 팬 투표를 통해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13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할 1푼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3할대 타율을 달성했다. 병살타는 전년도 3개보다 더 적은 1개로 2년 연속 리그 최저 기록을 세웠다. 시즌 종반에는 손가락 부상의 영향으로 12개의 실책을 기록했지만, 수비에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내야수 최다 득표(141표)로 베스트 나인(2루수 부문)에 선정되었다. 한편 홈런은 전년과 마찬가지로 하나도 없어서,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도 3년 연속 무홈런 기록은 1991년 ~ 1993년의 와다 유타카 이후 두 번째였다.같은 해, 구단 사상 최연소인 28세에 FA권을 취득하여 거취가 주목받았으나, 11월 11일에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히로시마에 잔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4년 계약을 맺으며 단년 연봉 1억엔 플레이어 대열에 합류했다. 회견에서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애칭)에서 일본 시리즈에 출전하고 싶다", "필요로 하는 한 카프에 남고 싶다"라고 말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 1. 7. 2009년
5월 16일에는 2년 만에 외야 수비(1번·우익수로 선발 출장)에 나섰지만, 수비 기회는 없었다. 올스타전에 2년 연속 출전하여 팀의 연고지인 히로시마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팀에서 5명이 선발 출장했다. 시즌에서는 팀이 타격 부진에 시달리는 가운데에도 연간 안정된 컨디션을 유지하며 142경기에 출전, 팀 내 1위인 타율 2할 9푼 4리를 기록했다.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에서는 최소인 39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타율은 하락했지만, 선구안이 향상되어 출루율은 전년보다 높았다. 2루수로서 리그 최다인 14차례의 실책을 범했지만, 팀 내 1위인 14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홈구장이 넓어진 영향으로 2루타와 3루타 개수가 증가하여 장타율도 상승했지만, 이 해에도 홈런은 기록하지 못했다. 이로써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의 연속 무홈런 기록은 프로 야구 역대 최장 기록인 4년 연속 무홈런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2]2. 1. 8. 2010년
4월 23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전에서 도노 슌에게서 5년 만에 홈런을 때려내며 연속 타석 무홈런 기록을 2393타석에서 멈췄다.[1] 올스타전에도 팬 투표로 3년 연속 출전하여 2경기에 출전, 구연 첫 안타를 포함해 3안타를 기록하며 활약했다.[1] 그러나 8월 하순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여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1] 규정 타석은 채웠지만 출전 경기 수, 타율, 안타, 도루 개수는 5년 만에 가장 낮았다.[1] 반면 결정적인 기회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출전 경기 수가 줄었음에도 개인 최고 기록인 40타점을 올렸다.[1]2. 2. 은퇴 후
東出 輝裕|히가시데 아키히로일본어는 2016년부터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1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 2020년부터는 2군 타격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15] 2021년에는 2군 감독 다카 시지가 골절로 수술을 받으면서 6월 15일부터 17일까지 3경기 동안 2군 감독 대행을 맡았다.[15] 2022년부터는 1군 야수 종합 코치를 맡고 있다.[16]3. 선수로서의 특징
준족, 교묘한 타격, 견고한 수비를 겸비했다.[18][19] 현역 시절에는 히로시마에서 17년간 활약했으며, 주로 2루수로서 두 번의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는 등 내야의 핵심으로 팀을 지탱했다.[20] 하지만 입단 초기에는 "내야수는 조금 경험밖에 없다"는 상태였으며, "시키는 대로 연습했지만 흥미가 없어서 몸에 익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또한, "팀에서 최고가 아니더라도 마에다 토모노리 다음으로 타격이 좋은 선수가 되면 된다", "타격을 잘하면 경기에 출전할 수 있고, 수비도 어느 정도 눈감아 줄 것이다"라는 각오로 마에다 토모노리에게 가르침을 청하며 타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였다.[21] 참고로 베스트 나인을 수상한 2008년 - 2009년에도 수비 범위가 넓어서 두 자릿수 실책을 기록했다. 우에하라 코지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2021년 7월에 공개된 영상에서 모리모토 히데아키는 마츠자카 세대 중에서 가장 강력한 2루수로 그를 꼽았다.[22]
4. 개인 기록
연도 | 2루 | 3루 | 유격 | 외야 |
---|---|---|---|---|
1999년 | 68경기 143자살, 177보살 7실책, 29병살, 수비율 .979 | 2경기 0자살, 0보살 0실책, 0병살, 수비율 - | 7경기 6자살, 8보살 9실책, 1병살, 수비율 1.000 | - |
2000년 | - | 1경기 0자살, 0보살 0실책, 0병살, 수비율 - | 116경기 217자살, 356보살 25실책, 93병살, 수비율 .958 | - |
2001년 | - | - | 139경기 249자살, 411보살 27실책, 83병살, 수비율 .961 | - |
2002년 | - | - | 107경기 171자살, 268보살 16실책, 56병살, 수비율 .965 | - |
2003년 | 30경기 43자살, 72보살 4실책, 14병살, 수비율 .966 | - | - | - |
2004년 | 48경기 36자살, 56보살 1실책, 7병살, 수비율 .989 | - | - | 3경기 2자살, 0보살 0실책, 0병살, 수비율 1.000 |
2005년 | 13경기 18자살, 26보살 3실책, 4병살, 수비율 .936 | - | 14경기 15자살, 31보살 2실책, 8병살, 수비율 .958 | - |
2006년 | 122경기 277자살, 421보살 8실책, 76병살, 수비율 .989 | - | - | 16경기 14자살, 0보살 0실책, 0병살, 수비율 1.000 |
2007년 | 124경기 294자살, 419보살 7실책, 69병살, 수비율 .990 | - | - | 7경기 10자살, 0보살 0실책, 0병살, 수비율 1.000 |
2008년 | 137경기 316자살, 475보살 12실책, 80병살, 수비율 .985 | - | - | - |
2009년 | 141경기 283자살, 435보살 14실책, 60병살, 수비율 .981 | - | - | 1경기 0자살, 0보살 0실책, 0병살, 수비율 - |
2010년 | 107경기 233자살, 338보살 7실책, 66병살, 수비율 .988 | - | - | - |
2011년 | 136경기 336자살, 378보살 11실책, 59병살, 수비율 .985 | - | - | - |
2012년 | 72경기 139자살, 187보살 4실책, 27병살, 수비율 .988 | - | - | - |
통산 | 998경기 2118자살, 2984보살 78실책, 491병살, 수비율 .985 | 3경기 0자살, 0보살 0실책, 0병살, 수비율 - | 383경기 658자살, 1074보살 79실책, 241병살, 수비율 .956 | 27경기 26자살, 0보살 0실책, 0병살, 수비율 1.000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히가시데 아키히로는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통산 1492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68, 1366안타, 12홈런, 262타점, 143도루를 기록했다. 주로 2루수로 뛰었지만, 유격수, 3루수, 외야수로도 출전했다.
4. 1.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1999년 5월 11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6회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2번·2루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석: 상동, 1회말에 이리키 유사쿠로부터 1루 땅볼
- 첫 안타: 상동, 3회말에 이리키 유사쿠로부터 2루 내야 안타
- 첫 도루: 1999년 6월 25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1회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1회말에 2루 도루 (투수: 발비노 갈베스, 포수: 무라타 신이치)
- 첫 타점: 상동, 6회말에 발비노 갈베스로부터 중전 적시타
- 첫 희생타: 상동, 8회말에 미나미 신이치로로부터 1루 앞 희생타
- 첫 홈런: 2000년 4월 8일, 대 한신 타이거스 2회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3회말에 그레그 핸슬로부터 우월 동점 솔로
4. 2. 기록 달성 경력
- 베스트 나인: 2회 (2008년, 2009년)
- JA 전농 Go·Go상: 2회 (Go Spikes상: 2001년 4월, 최다 2·3루타상: 2009년 8월)
- 2393타석 연속 무홈런: 2005년 - 2010년 ※구단 기록, NPB 3위[24]
- 올스타 게임 출장: 4회 (2006년, 2008년 - 2010년)